16살에 고아가 되어 이모집에 얹혀 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갓 입학한 20살의 신혜는, 부잣집 막내아들 기웅이네 집에 거주하는 가정교사다. 어느 날, 낯선 청년이 대문을 열어주는데, 군에서 제대한 기웅의 형, '최기훈' 이다. 기훈은 테니스를 가르쳐 주겠다며 매일 신혜의 아침 잠을 부지런히 방해한다. 기훈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는 생각에, 신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제가 집에 있는 게 싫다면, 나가겠어요." 라고 말을 꺼내자, 기훈은 신혜에게 고백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 집을 나간 적이 있었지. …… 그때 그 바다를 좋아했던 이후, 무언가를 이렇게 빨리 좋아하게 된 건, 네가 처음이야."
둘은 가까워지고, 어느 토요일 저녁, 북한강변의 저녁 어둠 속에서 신혜는 기훈의 입술을 받는다. 기훈과 한 지붕 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은 참아낼 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신혜는 대천해수욕장에서 횟집을 하는 이모네 집에 내려갔다. 아침부터 눈이 오던 날, 대천까지 내려온 기훈의 제안에 훌쩍 설악산 여행을 같이 떠난다. 폭설로 도로가 막혀, 강원도 진부의 어느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고, 그날 밤 신혜는 첫 경험을 한다.
신혜가 2학년이 되자, 기훈은 신혜의 학교 부근에 하숙집을 구해주고 대학 등록금도 내준다. 둘의 사랑이 깊어갈 무렵, 기훈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고, 신혜에게 기다려달라고 당부하며 비행기에 오른다. 기훈이 떠난 얼마 후, 그의 어머니가 신혜의 하숙집을 찾아와, 하숙집도 옮기고 기훈과의 서신 연락도 끊을 것을 요구한다. 산동네 싼 자취방으로 이사한 신혜는 설상가상 기훈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병원에서 애를 지운다. 그녀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래도 부족한 등록금 걱정에, 넉넉치 않은 이모한테 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민에 빠진다. 성탄 이브에는 우연히 알고 지내던 의대생에게 겁탈을 당하는 큰 충격까지 받게 되고, 등록금 마련도 어렵자 신혜는 휴학원을 내고,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요정에 나가게 된다. 신혜는 점점 요정 생활에 익숙해진다. 손님과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사내들의 욕망을 받아주기도 하며, 어쩔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음식상 위에 엎어지기도 하면서 신혜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 무렵, 미국에 간 기훈은 소식이 끊긴 신혜를 찾기 위해 귀국하고, 수소문 끝에 신혜를 찾아온다. 그녀가 술집에 나가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기와 떨어져 지낸 사이의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며 기훈은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가려 한다. 신혜는 자신 때문에 기훈이 더럽혀지고 때묻어 가는 걸 지켜볼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뒤 두 사람에게는 각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나이가 든 신혜. 그녀는 오랜 술집 생활을 청산하고 바닷가 근처에서 양품점을 하고 있다.
9월의 어느 일요일, 신혜는 바닷가 호텔 커피숍 앞에서 기훈과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강릉 '호텔 현대 경포대'일 듯 싶습니다. 작가의 묘사가 그 호텔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기훈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듣게 된다. 신혜는 기훈에게 말한다. "나 기훈씨랑 살고 싶어."? 둘은 하룻밤을 하얗게 지새고, 신혜는 버스 터미널에서 기훈을 울면서 배웅한다. 버스에 오르기전 기훈이 말한다. "미국의 내주소를 주고 가마. 언제든 연락해. 언제하라는 게 언제인지 아니? ? 두 가지 경우야. 오고 싶을 때, 보고 싶을 때, 그때는 언제나 연락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플 때도 연락해." 신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떠나고 신혜는 길가로 나서며 소리없이 중얼거린다. "잘가요. 다시는, 다시는 이렇게 만나는 일도 없겠지요. 깨닫고 나면 언제나 모든 것이 늦어 있던 연인이여. 내 가슴 전부였던 남자여. 남자여. 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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